도, 를 아십니까?
조선의 대표 칼, 환도

출처: 사진 속 사이트
18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한 <융원필비>에는 환도라는 명칭이 패용하기 편하게 칼집에 고리를 단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환에 띠돈을 달아서 좌우상하 회전성을 이용하여 칼자루의 위치를 자유롭게 변경시킬 수 있었는데 평상시에는 활동의 편의성을 기할 수 있게 자루를 허리 뒤쪽으로 보내어 패용하다가 필요시 다시 자루를 앞으로 오게 할 수 있는 조선만의 독특한 패용법이다. 칼날도 대부분 일면평조도로 양면 중 한 면은 각이 없이 평평하다.
환도는 군사용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의장용으로도 제작되었다. 왕실이나 중앙 조정에서 사용된 환도는 군기감에 소속된 환도장들이 만들었고 병사들의 무기로 쓰이는 환도는 각 지방에서 공납으로 제작되었다.
군기감에 소속되어 환도를 만들었던 환도장이 왕실의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일용품을 조달하던 상의원으로 바뀌었다. 이는 환도를 전투용이 아니라 왕실 및 귀족들의 패용을 위한 의장용으로 생각하였고 따라서 환도는 점차 고급화 되었다.
지방에서 중앙에 바쳐야 할 상공 품목이었던 환도는 병사의 무기였으나 정해진 양을 만들어 보내야만 하였기에 조선 초의 환도는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대체로 환도의 길이가 짧고 직선형의 형태를 띠었다.
조선 초기에 환도의 규격을 표준화하려 했으나 힘의 강약에 따라서 쓰게 하는 것이 적당하는 의견도 있어 길이에는 논란이 있었고 오늘날 남아있는 환도들의 규격이 일정하지 않다.
임진왜란을 통해 왜검의 우수성을 경험한 후 환도의 길이는 점차 길어지고 예리해졌으나, 후대로 갈수록 조선군에게 화약과 궁시가 주무기였고 위급시 사용하기 위한 보조무기로서 다시 짧아지고 가벼워졌다.
민제환도 民製環刀
조선시대의 군수산업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17~18세기를 걸쳐서 군수산업이 관(官)의 자체생산에서 민(民)이 관의 하청을 받는 방식으로 점차 전환되어 감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향으로 인행 민간에서도 철물장인 중에서 도검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야장들이 등장하게 됐다.
17세기 경상북도 청도는 명검 생산지로서 그 이름을 조선에 떨치게 된다. 이옥 (1760~1815)의 작품 <신아전>에 나오는 주인공인 청도의 신씨 검공은 '숯으로 칼을 벼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탄재라는 호를 지닌 벙어리이다. 그는 천하의 명검으로 유명한 일본도보다도 날카롭고 가벼운 무게를 지닌 뛰어난 품질의 조선 도검을 생산하였고, 그 재료로 값이 나가는 쇠를 사용하였다. 이옥이 신씨가 만든 검을 얻었는데, 머리칼을 불면 잘려나갈 정도로 매우 예리하였고, 금세 칼날이 부서질 듯 얇았다고 하며, 『송천필담』 제 396화에 의하면 벙어리 신씨의 검을 왜인들이 보고 신품이라고 극찬을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