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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검
한국의 도검 중 남아있는 절대 다수의 도검은 조선시대의 것으로 흔히 환도라 분류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조선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 하에서 개인의 자위권 행사가 제한되었고, 대부분의 병기류가 관에 의해 제조되고 관리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한국인들은 활이나 화포류 등의 투사무기에 보다 비중을 두는 경향을 가졌기에 남아있는 이 시기의 도검들은 관군의 부무장 또는 궁에서 사용되는 의전용 도검들이 대부분이고 민제의 도검들은 관의 제식을 모방하였거나 암장하여 호신을 위한 도검들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칼의 길이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짧고 편수 사용을 기본으로 필요시 쌍수를 겸할 수 있는 형태가 많고 띠돈이라는 특징적인 패용 장식을 사용하여 요품하면서도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국권침탈과 전쟁, 급진적 근대화로 보존과 관리가 미흡하여 남아있는 유물이 적은데 비해 매우 다양한 유형이 나타난다는 특징도 있다.
일본의 도검
일찍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룩한 한국, 중국과 달리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 무가정권에 의해 통치되어 근대화 직전까지도 봉건제를 유지했기에 지역 세력간의 패권 경쟁이 치열했다. 따라서 도검류의 생산량과 보존량이 가장 많았고 그 과정에서 기능적/문화적으로 독자적 발전을 이루었다. 도검의 패용이 복제에 일부로 양식화되어 무사의 경우 평상복 위에 대소 이도를 띠에 꽂아 패용함으로써 신분을 표시하였고, 갑주를 입은 기마무사의 경우 패용장식이 달린 타치를 부무장으로 휴대하였다. 특히 에도시대는 무가 정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도검이 상징화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현대 일본도의 특징들이 확립되었다. 양손 사용을 기본으로 베는 것에 비중을 두었으며, 독특한 표면 연마를 통해 차등열처리 및 공정에서 생긴 질감을 아름답게 연출하였다. 또한 부속 장식들을 일체형이 아닌 결합식으로 재조합으로써 도신의 제조, 연마, 도장구가 각각 별도의 공예영역으로 발달하였다. 일본도는 2차 세계대전에서 마지막 전투용 제식 도검으로 활용되었고, 지금은 하나의 미술품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