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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검

임금을 가장 측근에서 호위하던 운검무사들이 차던 칼 "운검"은 임금의 좌우에 서서 호위하는 임시직책이며 운검 혹은 별운검, 운검차비라고 하였다. '운검'은 2품 이상의 무반 두 사람이 큰 칼[운검]을 차고 임금의 좌우에서 호위하는 임시 직책이며, 주로 국가행사 또는 임금의 근거리 행차 시에 경호를 맡았고 나라에 큰 잔치나 회합이 있어 임금이 참석할 때에 유능하고 이름 있는 무장 중에서 가장 믿을만한 사람을 골라서 임명하였다.
국가 특수행사나 왕의 원거리 행차 시 별운검이 투입 되었다. 이들은 경호상의 목적도 없지 않으나, 주된 역할은 의장 내지는 호위자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들의 직책뿐 아니라 사용하는 칼을 운검 혹은 별운검이라고 불렀다.
<세종실록> 권 133 오례조 군례서례의 검은 '사람이 차는 병기'이다. 운검은, 그 칼집은 어피로써 싸고, 칠은 주홍색을 사용하며, 장식은 백은을 사용하고, 붉은 끈과 술을 드리우며 띠는 가죽을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일반 환도와는 별 차이가 없으며 외장에만 차이를 보이므로 단지 운검은 고급스럽고 화려한 보검이다.

서총대친림연회도

1560년 (명종 15) 명종이 창덕궁의 서총대에 친림하여 문무제신에게 베푼 연회를 그린 그림, 어좌 양편으로 운검이 서있다.
소장처 고려대학교 박물관
운검과 사육신
1456년 (세조 2)에 사육신 성삼문/박팽년 등이 주동이 되어 성승/유웅부를 별운검으로 선정하여 명나라 사신 윤봉을 영접하는 창덕궁의 연회장에서 세조를 살해하고 상왕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세조의 모신인 한명회가 비밀히 탐지하고서 세조 에게 아뢰어 그날 아침 세조는 연회장소인 전내가 좁다는 이유로 갑자기 운검들의 시위를 폐지하였다. 연회 당일에 운검을 폐지시킴으로써 결국 이 거사가 중지되고, 뒤따라 동모자의 한 사람인 김질의 고변으로 이들 사육신이 모두 고문 처형되었다.